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문단 편집) == 영향 == >우리는 총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고 대궐이 일본군에 점령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국인들, 조선 사람들 모두 크게 흥분했다. (중략) 신분의 높낮이를 가릴 것 없이 조선 사람들은 엄청난 공포에 빠졌다. 많은 양반들이 자기 집에서 도망쳐 나와 온갖 구실을 붙여 외국 공사관이나 시골로 피난을 떠났다. 평민들은 ‘떼를 지어서 시골로’ 떠났다. 가게란 가계는 모두 문을 닫았고, 도시는 마치 돌림병이 번진 것처럼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잔뜩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남자, 여자와 가마, 조랑말의 무거운 행렬이 중앙통을 지나 성문 밖으로 끊임 없이 흘러 나갔다. 어린애들의 애처러운 모습도 숱하게 보였다. 부모들이 매정하게 버렸거나 사람들 속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혼자서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ㅡ 당시 서울에 있던 릴리어스 호튼 (Lillias Horton)[*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의 부인]의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 中 [*출처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8]]] 언더우드 부인의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한양은 충격과 공포에 휩쌓였고, 유사 전쟁 분위기 그 자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